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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키우고 평등을 가르치는 <노르웨이 엄마의 힘> (김현정)

살콤아내 2026. 5. 31. 14:25

영화 〈겨울왕국〉의 배경이자 시원한 북극을 마주한 깨끗한 자연, 그리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 노르웨이는 내가 어릴 때부터 막연히 동경하며 한때는 이민까지 꿈꾸었던 나라다.

 

대학 시절, 겨울 오로라를 보러 무작정 노르웨이로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다. 당시 우연한 인연으로 현지의 어느 가정집에 초대받아 따뜻한 차와 저녁 식사를 대접받는 과분한 행운을 누렸다. 그런데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그 집 아주머니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영하의 차가운 바깥 공기 속에 그대로 세워둔 채 낮잠을 재우는 것이 아닌가. 지금에야 북유럽인들이 아이의 면역력을 위해 밖에서 재우는 육아 문화가 제법 알려졌지만, 유튜브조차 없던 그 시절의 내 눈에는 그저 그 아주머니가 유별나고 별난 사람으로만 보였다.

 

시간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한국인 저자가 쓴 《노르웨이 엄마의 힘(김현정 저)》을 읽으며 비로소 그날의 오랜 수수께끼가 풀렸다. 한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노르웨이의 육아는 단순한 '유별남'이 아닌, 대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단단한 삶의 철학이었다. 이 책은 내가 오랫동안 동경해 온 노르웨이 특유의 문화와 촘촘한 사회보장제도를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동시에, 지금의 우리나라와 내 육아 현실에 꼭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었다.

 

 

 

 

남녀평등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제도

노르웨이는 이미 1970년대부터 남녀가 평등하게 일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법과 제도를 다져왔다. 대표적으로 통상임금의 100%를 보전해 주는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 특히 남성에게 할당된 휴직 기간은 쓰지 않으면 그대로 소멸되기 때문에,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로 자리 잡았다.

 

기업 또한 공백을 고려해 인력을 여유 있게 채용하므로, 부모들이 재택근무나 휴직을 선택해도 회사 시스템이 문제없이 돌아간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여성들은 커리어 단절 없이 일터를 지키고,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기여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최근 아빠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추세여서, 여성이 독박 육아로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던 불평등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

 

이처럼 육아와 일의 균형이 가능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가정이 우선'인 사회적 분위기와, '무리하지 않는' 노르웨이인들의 삶의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야근을 미덕이 아닌 '업무 프로세스의 불합리함'으로 여긴다. 직장 일뿐만 아니라 육아와 가사 역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허용 범위까지만 해내고, 그 이하는 과감히 내려놓은 채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기준을 넘어서까지 무리하게 쥐어짜지 않기 때문일까. 책 속 노르웨이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욱하는 법이 적고, 사회 전반에 차분하고 평온한 기운이 감돈다. 제도의 탄탄함 위에 개인의 마음을 지키는 문화가 더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육아의 힘이 발휘된다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해 주고 있다.

 

 

형식적으로 보여주기식 사회복지가 아닌 개개인을 위한 세심한 사회복지

요즘 각 지자체에서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금전적 지원은 물론, 다양한 돌봄 서비스와 문화 행사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변화가 고맙고 실제로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와 일회성 행사에 치중한 나머지,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 예산이 낭비되는 모습을 볼 때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단순한 물질적 지원이나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현장의 전문 인력을 더 확충하여 양육자 개개인에게 딱 맞는 '맞춤형 케어'를 제공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가정이 실질적인 혜택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마주한 노르웨이의 복지 시스템은 인상적이었다. 노르웨이는 우리나라처럼 장애아동 가정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세심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산후우울증, 아이의 잠투정이나 변비처럼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상적인 고민조차도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안는다. 문제가 생기면 직접 전문가가 가정을 방문해 양육 환경을 점검하고, 부모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구체적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 준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그만한 일로 유난을 떤다"며 개인의 몫으로 넘겼을 작은 신호들을 국가가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다. 형식적인 보여주기식 수치에 매몰되지 않고, 양육자의 숨은 고충까지 촘촘하게 메워주는 진정한 사회복지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속도로 1등이 되는 곳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글로벌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뜨거운 교육열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 그늘은 짙다. 어릴 때부터 쉼 없이 경쟁하며 공부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의 학습 효율성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르웨이 공교육은 선행학습을 철저히 금지한다. 아이가 어떤 출발선에 서 있든 낙오하지 않고 동일한 배움의 기회를 누리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지향점이다. 숙제도 금지다. 방과후에 가정배경에 따라 학업능력의 차이가 조장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학업 능력이 뛰어나 명문대에 진학하는 아이도 있겠지만, '아이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는 문화 속에서는 대학 서열보다 '아이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타인과의 경쟁이 없으니, 노르웨이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가며 '모두가 각자의 무대에서 1등'이 되는 행복을 누린다.

 

노르웨이의 교육은 아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예체능을 배우고, 실생활에 유용한 능력을 익혀 인생을 풍요롭게 즐기도록 안내한다. 특히 가공되지 않은 자유놀이를 통해 스스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또래와 상호작용하며 협동과 갈등 해결 방식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반면 지식 위주의 주입식 교육과 치열한 입시 경쟁에 매몰된 우리나라 아이들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협동할 틈이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못내 씁쓸하고 아쉽다.

 

나 역시 제한된 공간에서 인위적인 교구로 채워진 수업보다는, 대자연의 품에서 아이가 날것 그대로의 세상을 배우며 성장하길 바랐다. 그래서 첫째 아이를 보낼 때도 일부러 수소문해 숲유치원을 선택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보육·교육 기관들은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돈되고 보기 좋게 세팅된 화려한 교구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잘 짜인 플라스틱 교구 속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흙을 만지고 나무를 타며 스스로 놀이를 창조할 때 아이의 사회성과 창의성이 자란다는 것을, 노르웨이의 교육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교육기관은 사회성을 배우는 곳

노르웨이의 교육 시스템 중 지금의 우리나라에 가장 시급하게 도입해야 할 영역을 꼽는다면 단연 '사회성 교육'이다. 이미 AI가 급격히 발달한 시대에, 지식을 습득하는 통로는 더 이상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미래의 학교가 수행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역할은 지식 주입이 아니라,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을 돕는 터전이 되는 것이다.

 

노르웨이 부모들은 이러한 본질을 영리하게 꿰뚫고 있다. 그들은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낸다. 노르웨이의 보육 기관은 나이를 통합하여 함께 생활하는 환경을 제공하는데, 아이들은 이 안에서 서로를 돕고 배우며 자연스럽게 작은 사회를 경험한다. 초·중·고등학교 역시 선후배 간의 멘토-멘티 제도를 통해 아이들이 연대감을 기르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면 형식적인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겠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이 연대의 끈이 아주 길고 꾸준하게 이어진다는 점이 부러웠다.

 

초등학교의 풍경은 더욱 신선하다. 그곳에서는 친구의 이름을 외워오게 하거나, 다른 친구에게 "우리 같이 놀래?"라는 말을 하루에 5번 건네는 숙제를 낸다. 제안을 받은 친구 역시 무조건 "그래!"라고 대답해야 한다. 얼핏 보면 황당하지만, 아이들의 사회성을 자연스럽고도 확실하게 이끌어내는 영리한 숙제다. 사소한 경쟁으로 서로를 고립시키는 법을 먼저 배우는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제도뿐만 아니라 공동체 문화 역시 소외를 허락하지 않는다. 노르웨이에는 '벤네그루페(Vennegruppe)'라는 친구 그룹 프로그램을 통해 반 아이들을 번갈아 집으로 초대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음식을 나눌 때도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어야 하며, 생일파티를 열 때도 반 친구 전체를 초대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만약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문제가 발생하면 특정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모든 학부모가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대안을 의논한다.

 

결국 사회성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단 한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촘촘한 약속과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학교가 강제로 사회성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노르웨이만의 평등주의(얀테의 법)

노르웨이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겸손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신을 자랑하면 주변으로부터 이상한 시선을 받기 십상이다. 특별히 눈에 띄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이들의 강박은, 얼핏 보면 개인을 통제하는 공산주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본질이 숨어 있다. 노르웨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깊은 신뢰와 자발적인 봉사, 그리고 기부 문화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맡은 바를 사회에 기꺼이 기부하려는 따뜻한 공동체적 연대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튀지 않고 평등해야 한다는 규칙 아래에는, 각자가 키워낸 재능을 공동체를 위해 아낌없이 나누겠다는 든든한 약속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나는 우리 아이들도 노르웨이의 '얀테의 법' 정신을 배우며 자라나기를 바란다. 남들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1등이 아니라, "나 역시 평범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겸손을 바탕으로 자신이 키워낸 재능을 사회에 기꺼이 기여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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