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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페르디난트 홀뵉 지음)

살콤아내 2026. 9. 13. 12:29

성당에서 주기적으로 모임을 하는데 한 자매님께서 <성체와 성인들>이라는 책을 빌려주셨다. 이 책은 성체의 역사를 78명의 성인들과 함께 시대순으로 나열하여 언제부터 우리가 현재와 같이 성체를 받아모시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성당과 교회의 차이중 하나가 성체성사에 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평소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셨기에 성체가 왜 중요한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성체와 성인들>을 읽고 나니 미사를 드리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고 성체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오래전 절판되어서 이제 구할 수 없다고 하니 아쉽다. 중요하거나 마음속에 와닿는 내용을 정리해보았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P.19. 서론: 성체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만찬 때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 예수께서는 가파르나움에서 말씀 중에 약속하신 것을 마지막 만찬에서 실행하셨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무제한의 의무를 지우는 명령을 내리셨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중략) 마지막 만찬에서 성체성사의 제정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1) 빵과 포도주는 육신의 허기와 갈증을 풀어주는 음식과 음료뿐만 아니라 잔치음식이며, 동시에 송별연이며 역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제사음식이다. 만찬은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식사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서로를 묶어주고 일치시키고 우정과 우의의 사랑과 동질성의 끈을 이어준다. 

2) "이것은 내 몸이니라...이것은 내 피이니라!' 라고 빵과 포도주에 대한 예수의 이 말씀은 비유적 상징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오직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중략)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는 말씀을 하신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 하느님은 일찍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어 계약을 맺으셨다. 이 백성들과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전하는 것처럼, 하느님은 피흘리는 제물이 계약의 일부가 되는 계약을 맺으셨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당신이 분명히 말씀하신 것처럼, 예레미아 31장 31절에 예고된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다. 그런데 이 계약은 역시 제물과 제물의 피흘림으로써 날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의 피흘림을 통해서 계약이 완성되어야 했다. 그에 대해 예수깨서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내 피다."에 "새로운 계약을 맺는 피다"라고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셨다. 즉, 그 피를 통해 새로운 계약이 체결된다. 시나이 산에서 맺은 구약의 계약에 대한 예수의 비유는 아주 명백하다. 출애굽기 24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모세는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려 주며 '이것은 야훼께서 너희와 계약을 맺으시는 피다'고 선언하였다. 시나이 산의 계약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은 모두 제물을 바침으로써 체결되고, 제물의 피흘림으로 확정되었다. 그때 모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실제 피를 사용했고 예수께서도 역시 이것을 받아들이셨다. 그리이스 원본에서는 성사를 제정하는 말씀을 새로운 계약을 맺는 조약(DIATHEKE)으로말했고, 이것은 히브리어로 계약(BERITH)로 옮겨진다.  라틴어 '유언'과 일치하는 그리스어 디아테케(DIATHEKE는 그리이스 법률용어에서 '유언'에 대한 전문용어이며, 두번째 의미가 비로소 '계약'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맺으신 새로운 계약은 의심의 여지없이 '유언(TESTMENT)'이다. 고린토 1서 11장 25절의 포도주에 대한 말씀은 라틴어로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Hic calix Novum Testementum est in Meo Sanguin)" 우리는 성사 제정에서 이것이 우선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지라도 성체성사를 '예수의 유언'으로 부를 수 있다

(중략)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과 인류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고 가장 소중한 것을 유산으로 남겨 주셨다. 앞서 제물로 바친 당신의 몸과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흘리신 당신의 피로써 당신 자신을 제물로 내어주셨다.

(중략) 빵과 포도주에 대해 성사를 세우신 상황과 사정에 고려한 결과, 우리는 "이것은 너희를 위해 바치는 내 몸이니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는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무조건 고집하고 주장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중략) 교황 바오로 6세는 <하느님 백성의 신경>에서 성체에 대한 신앙 개조를 충실히 고집하도록 촉구했다. 

18항: 이 성사에서 그리스도는 오직 빵과 포도주가 그분의 몸과 피로 변화됨을 통해서만 현존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보듯이 빵과포도주의 특성만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 남는다. 이 신비로운 변화를 성교회는 성변화라고 부른다. 

이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애쓴 신학자들의 해석은 가톨릭 신앙과 일치시키기 위해 이렇게 고집한다. 축성에 의해 본래의 빵과 포도주는, 우리의 생각과 관계없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흠숭하올 몸과 피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존재한다. 주님은 스스로 자신을 우리에게 음식으로 내어주시고 당신의 신비체의 일치 안에 끼워 놓기를 원하셨다. 

 

 

P.43. 카르타고의 치프리아노 성인 (258년)

아프리카의 주교 순교자는 최초로 매일 영성체를 분명하게 장려한 분이기 때문에 성체의 성인들 속에 들어간다. 

 

P.45. 예루살렘의 치릴로 성인 (387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몸과 피가 여러분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그 몸과 피를 받아 모실 때 그분과 한뭄이 될 것이다. 우리 지체 안에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들이면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를 몸에 간직한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말에 따라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게 된다.

 

P.52.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407년 9월 14일)

이 성인이 성찬의 신비에 대해 저술한 모든 것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교부는 여러번 성찬의 제물에서 구역의 전형적 제물이 성취되고 완성되며,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제물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을 봉헌하는 사제요 제물로서 과월절의 어린양이 되셨다고 말한다. 

2. 콘스탄티노플의 거룩한 총대주교는 나아가,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양식으로 받은 만나를 성체성사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 대신하여 신자들에게 순례중에 힘을 돋구어 주고 먹여 살리며, 모세가 바위를 쳐서 목마른 유대인들에게 준 물은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흘러나와 성찬례에서 구원의 잔이 된 피가 대신한다고 강조한다.

(중략)

4. 교부 성인은 멜키세덱의 질서에 따라 참된 봉헌 사제는 그리스도이며 그분은 항상 성체성사에서 인간 사제를 통해 당신의 몸과 피를 찬미와 감사와 청원과 속죄의 제물로 바친다고 설명하낟.

5. 요한 크리소스토모에 따르면, 성체 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실체 변화를 통해 참으로 실제적으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본질에서 지상 생활 동안 사람이 되신 성자께서 지냤고 이제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 계신 몸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한다.

6.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신자들이 성찬신의 만찬에서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참으로 그리스도를 몸과 피, 영과 육, 천주성과 인성으로 받아들이고 친밀한 일치를 이루게 되는 진리를 특히 강조한다.

7. 요한 크리소스토모에 따르면 성체를 맞잦게 받아 모시지 않는 사람은 중한 죄를 짓는 것이며, 그 사람은 배반자 유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도록 한 유대인들처럼 그리스도를 죽인 사람이 된다고 한다.

8. 주교 성인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깨끗한 마음을 요구한다.  

 

P. 56. 아우구스티노 성인 (430년)

여러분이 이제 곧 경건한 마음으로 영하게 될 이것은 하느님의 신비를 암시합니다. (중략)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처럼 해뜨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 바쳐지며 신약의 구원계획에 따라 하느님께 찬미의 제물로 바쳐집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짐승의 피를 흘리는 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제물은 하느님의 제단에 양이나 염소가 아니라 사제 자신의 몸과 피입니다. 그 사제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시편에서 예언되었지요. '당신은 멜키세댁의 사제직에 따른 영원한 사제입니다!' 멜키세덱이 지존하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의 탄생 때 우리에게서 받으신 괴로움 떄문에 우리를 대신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고 지존하신 사제가 된 우리 주 그리스도는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제물, 즉 당신의 몸과 피로 된 제물을 주셨습니다. 창에 찔린 그분의 몸에서 물과 피가 흘렀고 그것을 통해 그분은 우리의 죄를 씻으셔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총을 기억하고 있고 구원을 얻으려는 여러분은 이 제단의 공동체에 두려움과 삼가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아 모시는 것은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P. 59. 대 그레고리오 성인 (604년)

그레고리오 교황은 미사 성제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용한지를 <대화> 4권 56-57장에서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차츰 사라져 가고 모든 영혼이 경멸되는 이 세상을 보고 회개의 눈물과 함께 참회하는 마음으로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제물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이 제물은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영혼을 구원하는 유일하게 완전한 방법이다. (중략) 그의 몸은 여기서 먹혀지고, 그의 살은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나누어지고, 피는 더 이상 이교도들의 손에 있지 않고 신자들의 입에 쏟아 부어진다. (중략) 이 미사에서 우리도 역시 자신을 진심으로 통회하며 제물로 바쳐야 한다. 우리가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면 미사 성제는 하느님께 우리를 위한 제사가 된다. 

 

 

P.69. 란프랑크 복자 (1089년 5월 24일)

캔터베리의 수도자들을 위해 그(란프랑크 복자)가 정한 지침에서 성찬식의 제병을 준비할 때 지켜야 할 사항은 매우 유익하다. (중략) 성당지기는 제병이 될 수 있는 한 깨끗하고 적합하게 준비되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해야 한다. 먼저 밀을 주의해서 선택헤야 하고 훌륭한 천으로 된 깨끗한 자루에 넣어 두어야 한다. 꼼꼼하고 성실한 수사가 밀을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먼저 제분기에서 다른 곡식을 가려내여 제병을 만들 밀가루에 다른 것이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제병ㅂ너철을 달구는 수사를 제외한 나머지 수사들은 손과 얼굴을 씻고 장백의를 입고 머리에는 개두포를 써야 한다. 밀가루를 깨끗한 탁자 위에 펴놓고 물을 붓고 손으로 반죽한다. 제병 번철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장갑을 껴야 한다. 제병이 마련되는 동안 수사들은 시편을 낭송해야 하여 이 때 잡담을 헤서는 안 된다. 장작은 잘 건조된 것이라야 하며 오래 전에 준비해 두어야 한다. 

 

P.82. 빙겐의 힐데가르트 성녀 (1179년 9월 17일)

힐데가르트 성녀는 성체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말한다. "주님의 몸은 지극히 순결한 동정녀의 태중에서 생긴 그대로 깨끗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깨끗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 모셔야 한다. 성찬의 나눔에 참석하려는 사람은 하느님께 합당치 못한 상태로 나아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때문에 먼저 성실하게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성체를 받아 모실 때 각자의 순수함과 신앙의 열망의 크기에 따라 은총을 받는다. 올바르게 영한 사람들에게는 영성체의 효과는 크고 많다. 거룩한 성삼위가 친히 온다."

(중략) 힐데라그트 성녀가 어느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사적 영성체가 불가능할 때 영적 영성체를 할 수 있다고 적은 것이 있다. "누군가 주님의 몸을 열렬히 원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서 구토를 한다면 사제는 빵의 형상 안에 감추어 계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경외심에서 그에게 성사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머리 위에 주님의 몸을 들고 그 몸안에 성령을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며, 그 분의 몸과 피를 통해 이 사람의 영혼이 깨끗해져서 합당하게 되도록 청합니다.  (중략)  빵의 형상을 통해 즐겁게 정화되는 이성사에 대한 신앙은 확고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P.123.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1274년 3월 7일)

삼위일체에 관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성자 (로고스, 사람이 된 영원한 하느님의 말씀)가 천상 아버지(성부) 품안에 있음을 가리키며, 강생에 대한 가르침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성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성찬의 신비는 동정 성모 마리아인 교회의 태중에 있는 구원자를 가리킨다. 영원한 말씀은 강생에서 사람의 형상과 태도를 취하시고 성체를 통해 교회 안의 모든 생명의 실제적 토대로 현존한다. 말하자면 성체는 강생의 결과요 확장이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열매를 영원히 전한다. 사람이 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고 성체 안에 계시며 천상지복을 누리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길 없는 사랑은 다음 행에서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고 힘있게 말한다. "탄생으로 그분은 우리의 형제가 되셨고 / 성찬으로 우리의 음식이 되셨으며 / 죽으므로 우리의 대속 제물이 되시고 / 으뜸가는 우리의 상급이 되셨다" 

(중략) 토마스 성인의 성체 찬미가에서 그리스도의 현존 방법은 그와 연결된 기적을 통해 매우 분명하고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다루어진다. 특히 가톨릭의 성변화론은 매우 분명하게 옹호된다. "빵이 살로, 포도주가 피로 변하는 교의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주어졌도다" 우리의 한정된 사고 능력으로 이 성변화를 이애할 때 생길 어려움은 강생의 기적과 전능하신 하느님 말씀의 힘에 대한 암시를 통해 다소 제거된다. "육화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말씀을 통해 포도주를 변화시키고 / 빵을 거룩한 양식으로 변화시키며 길잃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 이성은 불안으로 침묵하고/ 감성을 통해서만 이해된다." 

토마스 성인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각기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매우 상세하게 말한다. <라우다 시온>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그리스도는 두 가지 방식/ 피를 음료로, 살음 음식으로/ 우리에게 온전하고 완전하게 존재하시는도다. / 그분을 받아 모시는 사람은 그분 곁에 머무르며 / 그분을 깨어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게 / 완전히 가진다. /한 번 받아 모시든 수천 번 받아 모시든 간에 / 항상 매한가지로 오시며 / 항상 그분은 그대로 계시도다. 

 

영성체의 탁월한 효과는 성체를 합당하게 받아 모시고 신학적 의미로 성화시키는 은총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 영성체를 하면 주님의 몸은 그에게 파멸을 가져다 준다. 토마스 성인은 영성체의 효과에 있어 영혼의 상태에 따른 이런 차이점을 다음의 시로 말한다. "착한 사람도 오고 나쁜 사람도 온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죽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 악한 이에게는 죽음을, 착한 이에게는 생명을 준다. / 보라, 같은 몸이 주어지지만/ 사람은 같은 것을 얻지 못한다."

 

 

 

P.156. 하인리히 쥬제 복자 (1366년 1월 25일)

합당하게 영성체를 하는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위안이 되는 말씀을 들을 것이라고 그는 서술한다. "당신께 제 자신을 드리며 당신을 받아들이고 당신과 일치를 이룹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없어지고 저로 변합니다. (지혜서 299면 6행 이하) 

(중략) '잘 준비된 사람'에게만 성체 안에 계신 주님께서는 생기와 생명을 주는 빵이 되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분은 딱딱한 빵이 되며, '준비가 전혀 안 된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멸망과 영원한 재앙이 된다 (지혜서 300면 11행 이하) 죽음에 이르는 대죄를 저지르고 성체를 영하려는 사람은 진심으로 뉘우치고 교회법에 따라 고백성사를 보아야 한다. (지혜서 30면 21행 이하) 영성체를 하기에 완전히 합당하게 되기는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고 "천사의 순수함, 성인들의 순박함, 인간의 모든 선을 가지고 있다해도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영성체를 포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한다면 더 이상은 필요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완성되지 않은 것을 완성시키시기 때문이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멀리 있는 것보다는 깊이 신뢰하는 사랑으로 자주 영성체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혜서 301면 1행) 영성체의 열매는 잦은 영성체로 자라고 드문 영성체로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매주일에 온전한 겸손으로 주님의 식탁에 나아가는 것이 교만한 독선으로 일년에 한번 나아가는 것보다 낫다. 

(중략) "길을 가다가도 친구에게 인사하기 위해 기꺼이 길을 조금 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 방으로 가거나 방에서 나올 때마다 성체께 인사드리기 위해 나는 기꺼이 경당에 간다."

 

 

P.167.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 (1380년 4월 29일)

성녀는 자신의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대화> 서문에서 이러한 비교를 한다. "영성체 때 영혼이 하느님과 친밀하게 일치되고 그분의 진리를 깊이 파악했기 때문에 물고기가 바닷물 속에 있고 바닷물에 물고기 속에 있는 것처럼 영혼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은 영혼 안에 있었다. 나는 항상 미사 성제에 참례하기 위해 아침이 오기를 고대했다. 

(중략) 햇빛이 태양으로부터 무수히 갈라져 나오는것처럼 흰 밀떡 안에서 신성과 인성으로부터 수많은 조각이 갈라진다. 밀떡이 나누어진다고 가정한다면 수천 조각으로 나누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조각들 안에는 완전한 하는미과 인간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깨어진 거울 조각에도 항상 전체 모습이 보이는 것과 같다. 다른 경우로 예를 든다면 불이 나누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네가 받는 이글거리는 빛을 받아들여라. 온 세상이 불타기 위해 그쪽으로 온다. 그럼에도 그 불은 줄어들지 않고 각자는 완전한 빛을 소유한다.

 

더욱이 그가 지닌 연료에 따라 전자가 후자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여러 가지 길이의 양초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초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불꽃이 있어야 한다. 크건 작건 간에 각각의 초에서 이글이글 타는 불, 빛깔, 성성에서 항상 완전한 불꽃을 볼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작은 초를 가진 사람이 큰 초를 가진 사람보다 적게 가진다고 주장할 것이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초, 즉 거룩한 열망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성체를 받아 모신다. 그의 초가 빛이 없어도 성체를 영함으로써 점화된다. 내가 빛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너희에게 이 빛을 유지할 수 있도록 원료를 주었음에도 너희 자신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의 원료는 사랑이다. 내가 사랑에서 너희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 없이는 너희는 살 수 없다. 나는 영혼을 창조했고 사랑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더욱이 영혼은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사랑은 그들의 음식이다.

 

그러나 빛, 즉 성체의 은사에 대한 너희들의 몫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열망도 커서 그것을 받아 모시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중략) 성체를 합당하지 않게 받아 모신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초를 불 가까이 가져가면 물로 변하여 버리는 것과 같다. 불이 그 물에 닿는 순간 곧 꺼지고 연기만 남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영혼은 아마 세례로 받은 자신의 촛불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죄의 물이 범람하여 세례 때 받은 은총이 심지를 적셨을 것이다. 영혼은 그 심지를 죄의 고백을 통해 진정한 참회의 불에 말리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빛을 얻기 위해 제단에 나갔다 해도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그토록 큰 신비에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까닭에 참된 빛은 그들 내부에 은총 충만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큰 혼란에 빠지게 하고 캄캄한 암흑과 무거운 죄의 짐을 지운다. 즉 영성체를 통해 양심의 가책밖에 얻지 못한다. 가령 빛은 어떤 방식으로든 침해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빛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중략) 마찬가지로 내 아들을 받아 먹으려는 성교회의 신비체 안에서 내 아들은 분배되지만, 말씀이며 태양인 내 아들은 태양이며 영원한 아버지인 나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그는 너희에게 완전자로서 머물며 너희는 그를 불꽃의 예에서처럼 신인 전체로 받아들인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완전하게 가지기 위해 빛을 준비할지라도 그 자체는 여전히 완전하게 남는다.

 

(중략) 사랑하는 딸아, 모든 사람들이 영혼의 눈으로 이 신비를 보고 깊이 생각하고 마음이 움직여져야 하지 않겠느냐? 육신의 감각과 시각이 아니다. 여기서는 감각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너도 보는 것처럼 눈은 빵의 흰 색깔밖에 보지 못하며 손은 빵으로 밖에 만지지 못하며 후각은 빵 냄새밖에 못 맡는다. 따라서 육체의 감각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영혼이 원치 않고 거룩한 신앙의 빛을 믿지 않음으로 인해 그것을 단념하는 한 영적인 감각으로 교체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성체를 냄새 맡고 보고 만지는가? 영적인 감각이다. 어떤 눈으로 이 성체를 보게 되는가? 거룩한 신앙이 있는 영적인 눈으로 본다. 그것은 빵의 흰색에서 인성과 신성이 하나가 된 완전한 하느님과 완전한 인간인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과 피를 본다. 몸과 하나가 된 영혼을 보며, 몸과 영혼은 내 신성과 하나가 되었으며, 결코 너희에게서 분리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성체를 만질 수 있겠는가? 사랑의 손이다! 그 손으로 눈이 이 성체 안에서 보고 감지한 것은 더듬어 찾아낸다. 신앙에서 보고 영적인 방식으로 인지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사랑의 손으로 만진다. 그러면 무엇이 이 성체를 맛보는가? 거룩한 갈망의 미각이다! 육체의 미각은 빵으로 느끼지만 영혼은 신인으로 느낀다. 너희는 여기서 영적인 감각이 아니라 육체의 감각이 바뀌는 것을 본다.

 

사랑하는 딸아, 이제 천사의 양식인 생명의 빵을 합당하게 받아 모시는 영혼이 얼마나 높이 들어올려질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라! 이것을 받아 먹음으로써 영혼은 내 안에 있고 나는 그 영혼 안에 머물게 된다. 마치 물고기가 바다 속에 있고 바다가 물고기 속에 있는 것처럼, 나는 영혼 안에 있고 영혼은 평화의 바다인 내 안에 있게 된다. 그러한 영혼 안에 은총이 머무른다. 빵을 먹으면 나는 너희 안에 내 은총을 새기고 뜨거운 밀랍으로 봉인할 것이다. 이 봉인을 없애면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혼 안에는 성사의 힘, 하느님의 사랑의 불길, 성신의 단맛이 남아 있을 것이다. 

 

P.275. 파찌의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1607년 5월 25일)

영성체에 대한 성녀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1. 여러분이 영성체를 위해 준비할 때는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을 직접 여러분 안에 모시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훌륭하고 합당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2. 습관적으로나 우연히 영성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심을 가지고 영성체를 하도록 하십시오.

3. 성체의 형상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는 한 거룩한 삼위일체를 모시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연히 (또 습관적으로) 영성체를 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영성체를 중단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주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순수의 샘을 받아 모실 때 어떠한 순수함을 지녀야 하겠어요!

4. 여러분의 너무 적은 갈망으로 인해 하늘로 난 창문이 닫히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5. 영혼을 완전하게 하는 데는 주님의 식탁에 나아가는 것보다 효과적인 도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도구를 이용한다면 단시간 내에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영혼을 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다만 합당한 영성체로도 적절합니다.

6. 하느님께서 이 영성체 때 여러분에게 특별한 은총을 주시기로 하셨는지 모른다는 고집에서 영성체를 중단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7. 영성체를 할 수 있음에도 포기한다면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에 대한 부당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8. 영성체를 준비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직접 여러분 안에 받아 모시고 다시 영접하기 위한 지식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9. 여러분의 일을 하느님의 마음에 들도록 좋고 순수하고 옳은 의도로 행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다음 영성체를 잘 준비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10. 하느님께 여러분의 모든 활동과 수도 생활을 영성체를 위한 준비로서 제물로 바치고 자주 예수의 소중한 피를 마십시오.

11. 여러분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 새로운 날에 영성체할 것을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12. 동료와 무슨 일을 할 때 영성체를 하기 전에 좋은 마음을 갖도록 환기시키십시오! 또 여러분이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예수께 간청하십시오. 또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들을 위해 피와 생명까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낄 때 영성체를 하십시오.

13.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며 우리에 대한 사랑에서 이 사랑의 음식을 통해 우리와 하나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4.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식하고 영성체를 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피와 수난을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나로서는 이 피가 없다면 주님의 식탁에 결코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15. 지옥에 떨어짐이 마땅한 우리에게 예수께서 이 성체성사로 당신을 내어 주시는 사랑과 자비를 보여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16. 가련한 우리 피조물이 우리 안에 하느님을 직접 모실 수 있는 것만도 얼마나 큰 은총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순수의 샘을 받아 모실 때 얼마나 순수해져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십시오.

17. 하느님께서는 아낌없는 사랑에서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 모시기를 원하십니다.

18. 영성체 전에 잠시 동안 여러분이 받아 모시는 것이 하느님이라는 진리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 하느님의 양식을 받아 모신 효곽가 없는 것은 대부분 하느님을 직접 모신다는 중대한 사실에 별로 주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대로 그분의 수난을 기념하면서 이 천상 음식을 영하러 가십시오.

20. 하느님을 받아 모실 때 이 세상에 하느님과 여러분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하느님 안에 완전히 의탁하십시오.

21. 영성체 후 시간은 가장 유익하고 소중합니다. 여러분은 이 때 예수를 감지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할 기회라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22. 또한 하느님과 대화하고 그분의 달콤한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에 따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가르침을 받을 적당한 시간입니다. 이제 이 반가운 손님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 필요 없이 가르쳐주시기 떄문입니다. 이 시간을 사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기회로 이용하십시오. 모든 것을 그분의 뜻에 맡기십시오.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이고, 이 영성체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영광을 드리고 세상 사람들을 돕겠다는 열망을 가지십시오. 

23. 영성체를 하는 날에는 그 무엇이든 마음을 어지럽혀 여러분의 마음에서 하는 일이 물러가시기 않게 하시고 아침에 하느님을 받아 모셨음을 항상 생각하십시오.

24. 자주 영성체를 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오는 큰 괴로움까지도 잘 참아낼 수 있는 힘을 이 천상 음식에서 얻습니다. 여러분은 갖가지 하찮은 일에도 비틀거릴 정도로 자신이 힘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당황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서 보다 큰 힘이 작용하게 되면 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항상 겸손해지십시오. 그것이 보다 큰 힘을 얻기에 합당한 조치입니다.

25. 자주 영성체를 하는 영혼은 본래 아주 공정하신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맡길 것입니다.

26. 하느님께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를 천상 혼인 잔치에 합당하게 하고 천상을 향한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 달라고 끈질기게 간청하십시오.

27. 모든 신자들의 마음속에 이 거룩한 음식에 대한 허기를 불러일으키도록 하느님께 간청하십시오.

 

 

P. 294.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1622년 12월 27일)

주님은 임금의 방식으로 자신을 나누어 주셨고 세 가지 분배 방식이 있다. 첫째,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자신을 나누어 주시고 아버지(성부)와 아들인 성신께 나누어 준 방식. 둘째, 삼위일체를 통해 (영원한 말씀인 로고스의) 신성을 인성(예수)께 나누어 주었다. 셋째, 하느님께서는 이제 당신 아들의 몸을 인성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나누어 주신다. 그리고 이 세가지 분배 방식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세번째 방식은 두번째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두번째는 세번째 방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중략) 살레시오 성인은 마지막으로 '필로테아'에게 다시 한 번 잦은 영성체를 간절히 권한다. (중략) 불완전한 사람은 완전함을 위해 노력할 수 있기 위해 자주 영성체를 해야 한다. 강한 사람은 영성체를 통해 약해지지 않고 약한 사람은 영성체를 통해 강해진다. 병든 자는 건강하게 되고 건강한 자는 병들지 않기 위해 영성체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병든 인간인 너는 너의 완전함이요 힘이며 의사인 그분과 자주 하나가 되어야 한다.

 

 

 

P.297 히야친타 마레스코티 성녀 (1640년 1월 30일)

그녀는 소녀들을 성체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채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잦은 영성체를 하도록 권하였다.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주님의 식탁에 자주 갈 용기가 없다고 말했을 때, 히야친타는 이렇게 말했다. "얘야, 성체는 그것을 씻어주고 우리의 곤궁과 불완전함을 태워버리는 불이란다! 자신을 합당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그러면 나머지는 이 신성의 불이 해줄 것이다!"

 

 

P.360.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 (1859년 8월 4일)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우고 세심하게 막는다면 물은 원하는 만큼 오래동안 그대로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성체 후 경건한 마음을 유지한다면 상당히 오랫동안 내부에서 악을 멀리하고 선으로 나아가게 하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느낄 것이다. 나는 영성체에서 자기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곧 다시 기도서를 손에 드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다고 본다. 주님꼐서 친히 우리 안에 머무시며 말씀하시는데 인간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략) 영혼이 성체를 합당하게 받아 모시면 그것을 알아챈다. 영혼은 그때부터 사랑으로 넘치고 가득 차서 변화되고 말과 태도에서 영혼을 다시 감지하지 못하게 된다. 영혼은 그때부터 겸손하게 자신을 죽이고 사랑이 넘치고 삼가하게 된다. 그러한 영혼은 역시 큰 제물이 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영혼은 다시 감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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