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콤아내의 육아/안녕 깜짝아!

깜짝! 새 생명이 찾아왔어요!

살콤아내 2020. 10. 1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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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 임신은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주말만 되면 신나게 아웃도어를 즐길 계획이었기 때문에 코펠부터 아이젠까지 등산용품을 사고 새해가 되자마자 설악산 종주를 다녀왔습니다.

 

같은 주에 배가 콕콕! 콕콕!’ 하며 뭔가 쌔~한 느낌이 들어 바로 약국에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사왔습니다. 평소 예민한 편이라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지요.

 

결혼 후 처음 사용하는 임신테스트기라 임신을 나타내는 두 줄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찬찬히 뜰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신랑한테 가서 임테기를 들고 오빠, 이거 고장났나봐!’라고 하는 순간 우리 둘은 놀라고 말았습니다.

 

빨간 한 줄이 두 줄로 나타나는 게 아니었겠어요! 임신을 바라는 누군가에게는 매직아이가 보인다는데, 이것은 분명한 두 줄이었습니다. 바로 산부인과 검진 예약을 하고 다음날 친구 결혼식에 가기 전에 잠깐 들르기로 했습니다.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 확인하러 왔다고 하니까 검사 전 잠깐 상담실에 가있으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생리일, 생리주기 등을 체크한 뒤 마지막으로 간호사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아직 계획에는 없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러자 간호사는 낳으실 건가요?’라고 제게 다시 물었습니다.

 

상담 후 바로 원장님 방으로 들어가서 검진을 했는데, 아기는 4-5주 정도 되었고 아기집이 보인다는 소견을 듣고 나왔습니다. 저는 아기를 가졌다는 생각이 믿기지 않아서 멍 때리고 있다가 나중에 간호사가 한 말의 의도를 알고 약간 당황했습니다. 아마도 원치 않는 임신인지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계획에 없었다고 말한 것이 아직 뱃속에 집만 지어놓은 아기에게 참 미안해졌습니다.

 

신랑은 어제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고 산부인과에 가기까지 하루 종일 아기 태명을 부르면서 기뻐했지만 저는 새 생명이 뱃속에서 자란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직 취업준비중인 저의 미래가 두렵기도 하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심장소리도 못 듣고 얼굴도 못 본 작은 세포에 불과한 아기가 제게 커다란 의미가 되었다는 것이 참 놀라웠습니다. 이것이 모성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생명이 깜짝 찾아온 기쁨도 잠시 입덧이 너무 심해서 거의 4개월 가까이 먹지 못했습니다. 입덧약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아침에 눈을 뜨면 이 하루를 어떻게 버티면 좋을지 막막하고 우울해졌습니다. 입덧약은 하루에 2알씩 4-5개월 동안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기분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기분이 차분해지다가 우울해지기도 하고 졸렸습니다.

 

그리고 먹은 것이 없으니 힘도 없어서 계속 눕눕 생활만 했습니다. 끝없이 입덧을 하니 입에서는 녹색 즙과 피가 나왔습니다. 장을 보려고 집 앞 마트에 걸어가면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며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럴 때는 비틀비틀 거리며 집에 가서 변기통을 부여잡았습니다.

 

임신 중에는 빈혈이 올 수 있다는데 혹시나 길가다 혼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핸드폰에는 남편 전화번호를 붙여놨습니다.

 

임신 초기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이렇게 사람을 피말리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프리랜서라 단축근무제도를 쓸 수는 없지만, 회사에 다니는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출퇴근 할 때 지옥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집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출산 당일 보다 더 힘든 과정이 4-5개월에 걸친 입덧이었습니다. 몸무게는 5키로나 빠졌고, 프리랜서 번역일도 거의 손을 놓게 되었고 자꾸 결과물이 늦어지는 마당에 사장님으로부터 쓴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습니다. 번역작업을 계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덜컥 아기가 생겨버렸기 때문에 임신을 이유로 그만 둘 수도 없었습니다.

 

아기만 없었더라면 밤을 새서 마감을 맞출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제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몸이 원망스러웠고 점점 무능력해지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사장님께서 출산 후까지 계속 작업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기에 출산 후 조리원에서, 집에 와서는 산후도우미가 아기를 보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냥 태교에 전념하라고 했지만 저는 오기로 버텼고 아기가 5개월이 되어 번역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고용보험에 가입이 안 된 프리랜서도 출산 전 18개월동안 3개월 이상 근무하면 2019년부터 출산급여를 월 50만원씩 3개월동안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번역을 하는 저는 11-6유형으로 프리랜서 근로 계약서와 소득활동 증명서, 출생증명서를 www.ei.go.kr 에 첨부했고 출산급여를 신청한지 한 달 뒤 150만원을 일괄 지급받았습니다. (출산 후 일년 이내에 신청하셔야 합니다)

 

어쨌든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입덧이 끝나면서 (산부인과 원장님도 입덧이 참 오래가는 특이케이스라고 하더군요) 저는 비로소 입맛을 되찾았고 태교여행을 갈 정도로 기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남은 5개월 동안에는 그 동안 하지 못했던 태교와 출산준비, 그리고 남은 번역일을 부랴부랴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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