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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 교육법 (칼비테)_2

살콤아내 2023. 7. 3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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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태교부터 출산 후 3년, 내 아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기

 

칼비테는 인간 현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다고 여겼다. 오히려 정신에는 많은 즐거움을 허락했으며 지식을 늘리기 위해 배울 가치가 있는 모든 것들을 배우며 애를 썼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건강하고 소박하며 마음이 순수해야 했으며 자신의 계획을 함께할 조력자가 될 사람을 구했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의 건강과 교양, 존재의 완전성을 위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들어주었다. 임신을 하고서도 차로, 도보로, 마차로 여기저기 여행을 자주 다녔다. 칼 비테의 아들은 신체적 오점 없이 태어났고 건강하게 청년으로 자랐다.

 

칼 비테는 인간이 타고나지 않은 신체와 정신의 온갖 결핍은 부모, 교사, 친척, 친구들, 본인스스로의 부주의로 생긴다. 칼 비테는 신체적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했다.

 

그의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유두가 솟아있었는데, 산후도우미가 고인 젖을 짜내야 한다고 눌러서 젖꼭지가 곪아있었다. 의사를 불러 절개를 하고 종양을 제거했지만 아이는 기운이 빠진 후였다. 만약 이를 몰랐더라면 아이는 병에 걸렸을 것이다. , 인간이 부주의하고 분별력이 없고 게을러서 생긴 일인 것이다.

 

칼 비테는 부유하지 않았지만, 매번 아이의 침구류와 의복을 청결하게 세탁하고 말렸으며 아이를 욕조물에 꼼꼼하게 씻겨 따뜻하고 건조한 침대에 뉘였다. 그럼으로써 세균이 몸으로 유인되는 것을 막았다.

 

칼이 9개월이 되자 팔과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되었고 싸개를 풀어 양털 깔개에서 놀게 하였다. 칼은 최대한 밖에서 지냈다. 마당 정원이나 풀밭에 앉히거나 유모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아무런 구속 없이 눕거나 앉을 수 있는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아주 유익했다. 안전한 야외서 놀면 기분이 좋아지고 소화도 잘 되고 금세 피곤해지고 잠도 잘 온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오래 자게 내버려두고 잠을 방해하지 않게 했다. 숙면을 위해 아이가 피곤해질 때까지 억지로 재우지 말고 둬야 한다.

 

아들이 일어서자 손을 잡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거나 보행기를 들이는 대신 스스로 걷는 법을 터득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스스로 난로에 조금 데이거나 넘저지고 부딛혀도 해를 입어보고 깨달을 수 있게 했다. 칼 비테 부부는 함께 노는 것이 아이를 보살피는 일로 여기고 아기 옆에서 아기가 스스로 배우도록 독려했다.

 

 

"함께 노는 것이 아이를 보살피는 일"

 

칼 비테는 어린 시기부터 아이와 놀아주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또한 세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교육적인 장난감이 된다고 확신했다어린아이와 노는 것은 단순하고 즐거워야 한다. 이런 놀이를 통해 잠재적인 힘을 일깨우고 지도하고 강화시켜야 한다. 따라서 섬세하지 않고 감각적인 놀이부터 시작해야 한다.

 

장난감을 잔뜩 사서 제대로 지도하지도 않고 아이 맘대로 놀게 내버려두기보다느느 주변의 온갖 물건을 장난감으로 삼는 것이 낫다. 분별없는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쉽게 다치고 아무것도 배우지도 못한다. 시간을 반쯤 무의미하게 보내다가 곧 지루해하고, 짜증내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에는 지루함에 대한 불만을 장난감을 집어던지거나 내치며 푼다. 한마디로 망가뜨리고 파괴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마지막에는 주변 동물과 사람에게까지 화풀이하게 된다. 파괴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우며 지속적으로 지성, 감정, 정서에 나쁜 영향을 준다.

 

또한 장난감이 너무 많으면 장난감에 무관심해진다. 결국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다. 곧 새로운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지만 이는 그저 소유하기 위해 사달라고 하는 것이다. 적합한 사용, 이로움, 기쁨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무관심해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에 욕심을 내는 것은 미래의 삶에 가장 해롭다.

 

장난감을 사는 대신 그는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놀이와 오락으로 즐겁게 아들을 가르쳤다. 그 결과 아들은 수천가지의 사물을 익혔다. 아이가 불만을 갖거나 울음을 터뜨리면 새로운 것을 보여주며 주의를 돌렸다. 어떤 일을 할 때 의도적으로 실수를 하거나 무언가를 빠뜨리면서 칼이 그것을 발견하게 했다.

 

모래놀이를 하는동안 많이 생각하도록 장려했다. 주방용품을 장난감으로 활용하며 역할놀이도 했다. 또한 서로의 입장을 바꾸는 연극놀이로 아들의 나쁜 버릇을 확실하게 고쳤다. 여행놀이를 하며 여행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함으로써 방문한 도시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거나 새로운 특별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렇게 칼 비테는 아이와의 놀이를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제대로 교육받은 아이는 날마다 장시간에 걸쳐서 놀이를 확장시킨다. 예컨대 블록놀이를 한다면 새로운 건물들을 지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심사숙고하고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익히기 때문이다.

 

그는 마당과 정원, 풀밭과 들판이 없었다면 아들을 그렇게 경건하게 교육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며 잘못 지도받은 적이 없는 아이는 늘 신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마침내 복종하고 감사하며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친구관계

아이들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아이들 틈에서는 생각, 경향, , 행동을 거의 조심할 필요가 없으니까. 늘 감독을 당하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으니까. 그렇지만 아이들이 또래 친구 없이도 즐거울 수 있다.

 

교육받지 못한 부모의 아이들을 교육받은 부모의 아이들과 아무 준비 없이 어울리게 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형편없이 교육받는 아이들의 약점은 훌륭하게 교육받는 아이들을 쉽게 파고든다. 왜냐하면 덕성은 처음에는 노력과 극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노력과 극기는 우리의 성향과 욕구를 거스른다. 그러므로 제도권 시설이나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학교에는 대부분 하층민 아이들이 있고, 교사 한명당 담당하는 학생의 수가 많다. 아이가 부모나 다른 분별있는 사람들과 놀면 다른 아이들의 나쁜 버릇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물론 감독을 받으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주는 것은 좋다.

 

 

"절제하는 식습관과 소박한 식사를 장려"

 

임신할 때부터 아내는 소식을 했으며, 붉은 고기와 기름진 음식 등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멀리했다. 아이가 태어나 젖을 먹일 때에도 평소보다 조금 많이 먹을 뿐 과식하지 않았다. 아이가 젖을 떼고 이유식을 먹을 때, 스프부터 시작해서 버터바른 빵과 물을 먹였다. 세 살이 되자 어른과 같은 음식을 먹였으며, 음식에 대한 상상적인 이야기를 꾸며내어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자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게 되었다.

 

칼 비테는 이성과 습관을 통하여 인간 내면의 고결함을 끄집어내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교육자의 의무라고 하였다. 제대로 교육받으면 이런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식습관도 마찬가지이다. 과식을 하면 소화시키느라 판단, 견해, 인식은 뒤떨어진다. 그러므로 절제하는 식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칼비테는 아이가 단 것을 처음부터 조금만 먹거나 아예 먹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게 했다. 단 것에 맛을 들이면 소박한 음식에 무관심해진다. 그래서 그는 배부를 때만 단것과 군것질거리를 주었다. 또한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육식동물의 야생성과 초식동물의 부드러움이 드러난다. 그래서 고기를 필요하지 않는 한 적게 먹였다. 채식으로 아이는 유순해지고 양보심도 늘어났다.

 

 

 

 

Part 4. 타고나지 않은 아이를 최고의 인재로 키우는 법

 

아이의 윤리적 성장을 위해 항상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엄격하게 대하면서도 듬뿍 사랑을 쏟았다. 부부중 한쪽이 아이의 응석을 너무 받아주었다면 다른 한쪽이 크게 나무랐다. 또한 모든 질문을 허락했고, 어떤 것을 요구할 때 안되는 이유를 타당하게 들어주었다. 아닌 것은 확실히 아닌 것을 아는 순종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무조건적인 순종은 정말 중요하다. 그저 하지마, 아니야라고 말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순종하지 않는 아이는 제멋대로 행동하다 피해를 입기 마련이므로 크게 소리를 질러야 할지도 모른다. 칼은 아이들과 절대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할 것, 조심스럽게 조건부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이들이 자기 의견을 형성하고 표현할 때까지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분했다. 하지만 여기서 옳은 것은 부정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다. 만약 아이가 옳은 이야기를 했지만 상황에 부적절한 말을 한 경우, 왜 그 발언이 부적절했는지, 타인의 기분을 헤아리고 존중하며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로써 아이가 윤리성과 경건성에 어긋나는 잘못을 통찰하고 후회하고 고칠 수 있도록 도왔다.

 

 

"놀이와 공부를 엄격하게 구분"

 

아이가 3-4살 때 독일어 철자 모형을 가지고 읽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자연, 환경, 삽화로부터 배운 아이가, 집짓기 블록이나 철자 모형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갑자기 인쇄된 단어에 몰두해야하자 당황했고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읽기를 하지 않도록 내버려둬야하나 고민하던 중 아이가 관심있어하는 이야기책을 발견하여 여러번 읽어주었는데, 아이는 책을 열중해서 읽게되었다.

 

아이가 배우려면 스스로가 배우려는 욕구가 있어야 하고,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르처야 하며, 가장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야 한다. 칼 비테는 아이에게 쓰기에 관해 동기부여를 했을지언정 쓰기를 가르치지 않았다. 쓰기에 정신을 뺏기거나 문어에 의존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없이 가르쳐달라고 간청한 후에야 쓰기를 가르쳤으며 인쇄된 철자를 따라 그리고 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놀이를 통한 교육법을 실천할지라도 그는 공부와 놀이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조기에 놀이로 배운 아이는 계속 그렇게 배우고 싶어하며, 언젠가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때 배우고 싶다는 욕구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놀 때에는 정신력을 자유로이 마음껏 펼칠 수 있지만 공부할 때는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칼비테 본인은 6개국어를 했으며 아들에게도 차례차례 외국어를 가르쳤다. 칼이 5살 때 모국어를 완전히 깨친 후 여섯 살이 지나서야 15분씩 프랑스어를 가르쳤으며 점차 그 시간을 1시간 30분까지 늘렸다. 그 당시에 상류층의 외국어 교육은 라틴어와 고대그리스어부터 시작했다면, 그는 친숙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네덜란드어로 기초를 쌓고, 라틴어, 고대그리스어를 가르쳤다. 아들은 다른 언어를 배우기 전에 개별 언어를 완벽히 구사해야 했다.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데 1년이 걸렸지만 한 언어를 마스터하자 나머지 언어는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칼비테의 아들은 분석을하며 철저하고 꼼꼼하고 분명하게 뜻을 이해하려 했다. 굳이 사전이나 문법책을 뒤지지 않아도 명료하게 단어를 알았다. 같은 소설을 두고 각기 단어로 번역된 버전으로 돌려읽기도 했다. 아이가 완전히 이해할 만한 글, 아이를 위해 세심히 쓰인 글을 던져주면 아이는 재미있고 유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는 가능한 곳에서 아이의 세계를 발견해야 한다. 무대, 사건, 인물이 유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아이같이 천진난만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언어에 대한 철학, 즉 문법부터 가르치는 것을 반대했으며, 쓸데없는 분석을 하지 않았고, 쓰기 연습을 시키지 않았다. 반면 두 언어로 더 많이 읽게 하고 읽은 것을 완전히 습득하게 했다.

 

우리가 무게를 덜 잡고 가르치면 아이들은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나는 완전히 놀이로만 가르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진지함과 익살이 적당히 섞여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칼 비테는 일상 대화중에 외국어를 종종 하용하여 대화하였다고 한다. 또한 여행을 통해 인문학적인 교양 뿐만 아니라 지리, 과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도록 했다.

 

또한 미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그는 집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집 물건을 소박하게 정돈했다. 밖에서 기회가 되는 한 아름다움을 음미했다. 전시회도 가보고 아름다운 시를 외우면서.

 

 

"공부를 하면 금전적인 보상을 줌"

 

아이가 착한 행동을 해도 금전이나 값진 물건으로 보상해주지 않았다. 성취감, 스스로 했다는 기쁨, 아들의 눈앞에서 보여주었던 선행의 유익한 결과와 같은 것들이 보상이었다. 올바르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엄하게 교육했고 실수는 슬퍼하며 나무랐다. 반면 그는 아들이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정신노동이라 여겨 그 대가로 돈을 주었다.

 

 

 

Part 5. 부모는 더 넓은 세계를 만나는 문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기 물건만 사용하게 했다. 고가의 물건까지 말이다. 칼의 아들은 7살 때 우연히 교양인들 중 테르티우스 란트포크트에게 시험을 보게 되었고, 아들의 신통함은 함부르크 지방 신문에 실리게 된다. 이를 계기로 라이프치히 대학 로스트 교수가 칼을 불러 시험을 했고, 그의 빼어난 정신을 번영시키기 위해 어린 나이임에도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을 허락한다. 그는 법학박사가 되어 베를린 대학에서 16세에 교수로 임용되고 18세에는 국왕의 명에 따라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다. 1923<단태의 오해>라는 책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83세에 운명할 때까지 할레대학의 법학강의 교수로 강의에 열정을 바쳤다.

 

칼 비테는 아이가 어릴 때 유연한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 무제한의 질문을 허용했다.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다양한 토론거리를 제시해주었다. 사고의 도구인 언어 훈련을 위해 모국어를 정확히 발음하고 어법에 맞게 사용하도록 했다. 또한 그는 조기교육이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흥미를 통해 자발적으로 동기를 유발한 다음에 학습을 적기에 시작할 것을 조언했다. 또한 그는 달콤한 칭찬과 또래 친구들을 주의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부와 놀이를 엄격히 구분해서 청소년기 지루해질 수 있는 공부가 지속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교육을 통해 행복한 사람을 만들고 싶어했다는 것이 다른 교육자들과 차별화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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