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은 일하는 모습과 사적인 모습이 다른 두 얼굴의 여자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장마르크는 그녀의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그 자신이 사랑하는 샹탈의 모습이 사라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장마르크는 의학을 공부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둔 야망을 포기한 무기력한 남자다.
두 사람은 일과 관계에 "권태"를 느끼고 있던 중 장마르크가 꾸민 익명의 편지사건으로 인해 "권태"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두 사람사이의 내적 갈등의 시작된다. 전반적으로 이 소설은 두 사람이 겪는 내적갈등을 의식의 흐름대로 모호하게 그려낸 느낌이었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의 제목이 왜 <정체성>인지 정말 궁금했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삶의 본질적인 것에 대한 심오한 대화를 하는데, 여기에 <정체성>의 답이 있지 않나 싶다.
"인생의 본질은 삶이 지속되게 하는 거야"
"우리의 유일한 자유는 회환과 쾌감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다고.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 우리 운명이니 그것을 결점처럼 끌어안고 살지 말고 즐기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샹탈은 여러가지 얼굴을 하고 있고 (직장인, 장마르크와의 관계, 과거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각각 달랐다), 샹탈은 그녀의 다른 얼굴을 볼 때마다 자신이 본 그녀의 정체성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지 의심한다. 이처럼 두 인물은 정체성을 특정한 것으로 규정시키려고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 이야기의 흐름만큼이나 하나도 명확한 것이 없다.
소설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정체성이란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것으로 정할 수 없으며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즉, 인생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니 우리는 선택하며 즐겨야 한다.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정체성> 줄거리
샹탈은 5살짜리 아이가 죽은 뒤 남편과 이혼하고 장마르크라는 연하의 남성과 사랑에 빠져 동거를 한다. 하지만 어느날인가부터 여자로서 나이를 먹었음을 느끼게 되고 더 이상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아서 자신감을 잃어간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날 쳐다보지 않아" 라고 장마르크에게 말하게 되는데, 장마르크는 샹탈을 사랑한 나머지 노화에 의한 상실감을 해결해주기 위해 C.D.B.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라는 가명으로 몰래 그녀의 (육체적) 매력을 칭송하는 편지를 보낸다.
"샹탈, 내 사랑하는 샹탈, 샹탈! 그는 이런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그녀의 변형된 얼굴에 잃어버린 옛 모습, 그녀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불어넣어 주려는 듯했다."
샹탈은 익명의 편지를 받고 다시 자신감을 얻는다. 누군가 나를 염탐하고 있다는 은밀한 상상을 하면서 다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거지, 웨이터 등) 속으로 에로틱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장마르크는 익명의 편지로 그녀를 유혹한 뒤 그녀가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녀가 편지를 꽁꽁 숨기며 혼자 얼굴이 빨개지며 낯선남자의 유혹에 빠져들자 질투하기 시작한다. 샹탈이 내가 알던 샹탈이 아니라면?
"당신이 내가 상상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내가 착각을 했다는 생각."
이내 장마르크는 샹탈이 일반 여성과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이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마지막 편지를 쓴다.
"이 게임이 그것을 요구하니 그는 익명으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욕구, 정당화될 수 없고 정당화되지 못한 욕구, 비합리적이며 은밀하고 필경 멍청한 욕구가 그에게 완전한 익명으로 남지 말고 하나의 흔적을 남겨 어떤 미지의 관찰자라도 뛰어나게 명철하다면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암호화된 서명을 어딘가에 남겨 두라고 충동질하고 있었다."
샹탈은 장마르크가 마지막 편지를 쓰기 전에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속옷 사이에 편지를 숨겨놨었는데, 장마르크가 이를 본다는 느낌. 이내 편지가 장마르크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가 본인을 감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편지에서 "당신은 늙고 나는 젊다"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아 너무 배신감을 느낀다.
어느 날 시누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들이닥친 뒤, 샹탈은 장마르크와 본인이 혐오했던 시누와 어떤 차이점을 느끼지 못한다. 샹탈은 이제는 이 편지에 그녀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선전하듯이 장마르크의 마지막 편지를 그가 보는 앞에서 읽어버린다. 그날 저녁 이후 그 둘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샹탈은 장마르크에게 런던으로 잠깐 출장을 갈 것이라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떠난다. 장마르크는 빈 아파트에 남아있다가 열쇠를 두고 샹탈을 찾아 런던행 기차에 몸을 담았다.
샹탈은 기차역에서 직장동료를 만나 함께 런던행 기차를 탄다. 거기서 인생에 대한 심호한 대화를 한다.
"인생의 본질은 삶이 지속되게 하는 거야"
"우리의 유일한 자유는 회환과 쾌감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다고.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 우리 운명이니 그것을 결점처럼 끌어안고 살지 말고 즐기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그녀는 모든 남자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장미의 은유에 대해 생각했고 지금까지는 사랑의 감옥에서 살았지만 이제부터 장미의 신화에 기꺼이 복종하고 그 도취적 향기에 스스로 녹아들리라고 생각했다."
"자유라? 당신의 참혹한 현실을 겪으면서 당신은 불행할 수도 있고, 혹은 행복할 수도 있지. 당신의 자유란 바로 그 선택에 있는거야. 다수의 용광로 속에 당신의 개별성을 용해하면서 패배감을 맛보느냐, 아니면 황홀경에 빠지느냐는 당신 자유야. 우리 선택은 바로 황홀경이지."
이윽고 런던에 도착하고 장마르크는 기차역에서 내린 샹탈과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그녀는 사라진다. 노숙자처럼 그가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가운데, 샹탈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죽은 자신의 아기를 떠올리며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다.
"그녀는 알몸인데도 저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벗기려 드는 거다! 그녀의 자아로부터 그녀를 벗기는 것! 그녀의 운명으로부터 그녀를 벗기는 것이다! 그녀에게 다른 이름을 준 다음 그들은 결코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길이 없을 그녀를 익명의 사람들 속에서 내던질 것이다"
샹탈은 현실과 비현실이 오가는 카오스속에서 몸부림친다. 소설 결말에는 현실과 비현실속에서 몸부림치는 샹탈을 장마르크가 깨운다.
"누가 꿈을 꾸었는가? 누가 이 이야기를 꿈꾸었는가? 누가 상상해 냈을까? (중략)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현실 속 삶이 이런 뻔뻔한 환상으로 변형되었을까? (중략) 현실이 비현실로, 사실이 몽상으로 변했던 정확한 순간은 언제일까? 그 경계선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경계선이 있을까?"
그리고 침대에서 샹탈은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거야.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보겠어"라고 고백하며,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 놓을거야. 매일 밤마다" 라고 말하며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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