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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콤아내의 책방_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드보통)

살콤아내 2021. 3. 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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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닫았습니다.




알랭드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사랑에 관한 작가의 철학적 에세이를 한 커플이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줄거리로 풀어나갑니다.

한국어 제목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짐작하듯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은 처음에 낭만적인 연애를 하고 결혼에 이릅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신혼생활이 끝나자 낭만적이기만 한 결혼생활은 사라지고 여느 보통 커플들과 같이 부부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혼생활은 점점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이 되는 것이죠. 라비는 출장에서 한 젊은 여자와 잠깐의 외도를 하지만 곧 커스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결혼한 지 16년이 지나서야 본인은 결혼 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죠.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커스틴이 까다로운게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제 행복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가르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라비 칸은 커스틴이 곁에 있으면 인생이 무엇을 요구하든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

라비와 커스틴이 겪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은 낭만주의적인 사랑이 점점 성숙하게 변모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소설에서 보았듯이 이 커플이 겪는 사랑의 과정은 항상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영어 제목이 <The course of love>인가 봅니다. 사랑의 과정에는 낭만 뿐만 아니라 미움, 질투, 갈등, 배신, 책임감 등 복잡다양한 감정들이 섞여져 있습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요. 우리도, 타인도, 거의 어떤 것도 모두 완벽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결혼을 앞둔 커플, 결혼을 한 신혼부부, 결혼 후 따분한 일상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책 입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들>

1부. 낭만주의
라비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지에서 한 소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춘기 소년이 흔히 겪는 사랑에 관한 낭만적인 상상이다. 성인이 되서 커스틴을 만나 교제하고 짧은 낭만적 연애 후 곧 청혼한다.

13pg. 다른 사람이 영혼의 짝이라는 느낌, 이 확신은 아주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다.

16pg.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게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27pg.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있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마치 아는게 없는 듯하다.

28pg.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30-31pg.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한다. (중략) 사랑은 약점에 과한 것, 상대바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 약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시기에 (즉, 주로 초기에) 그렇다.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여러가지 장점을 갖고 있지만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우리는 지지자라는 새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지게 된다.

41pg. 성욕은 처음에는 단지 생리적 현상의 결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감각적이라기보단 관념적이다. 무엇보다 받아들여졌다는 생각, 외로움과 부끄러움이 끝날 거라는 기대와 관련이 있다.

55pg. 이렇듯 혼인과정을 엄정히 분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 지위가 낮다. 물론 우리의 질문은 주로, 어디서 어떻게 청혼했느냐에만 집중된다.

57pg. 역사가 시작된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논리적 이유로 결혼을 했다. 합리적 결혼은 어떤 진실에서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으며, 자주 편의주의적이고, 편협하고, 속물적이고, 착취적이고 모욕적이었다. 이를 대체한 것- 감정에 의한 결혼-이 그 존재이유를 설명할 필요성을 면제받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결혼이 옳다고 가슴으로 느끼느냐다.


58pg. 결혼이 실용적인 면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은 오히려 결혼에 더욱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한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결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그가 청혼한 것은 그와 커스틴이 서로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을 보존하고 '동결'시키길 원해서다. 그는 결혼이라는 행위를 통해 황홀한 기분이 영원해지길 기대한다.

63pg. 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건 친밀함이다. 우리는 유년기에 아주 익숙했던 감정들 그대로를 성년의 관계 안에서 재현하길 바라고, 그 감정은 다만 애정과 보살핌에 국한되지 않는다.

65pg.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2부. 그 후로 오래오래
커플은 결혼을 하고 현실적인 사소한 문제들로 신혼부부는 삐꺽거린다. 별일 아닌걸로 토라지기도 하고 남 탓을 하기도 하고 서로 가르치려고 든다.

86pg.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가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88pg. 토라짐은 우리의 가장 이른 유년기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아름답고도 위험한 이상, 즉 무언의 이해가 보장되어 있다는 이상에 경의를 표하는 행위다. 자궁에 있을 때 우리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필요가 충족되었다. 적절한 위안이 저절로 발생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알릴 필요가 없었다. 크고 친절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가늠해줬다. 우리의 눈물, 우리의 불분명함, 우리의 혼란을 꿰뚫어보고, 우리가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불편함의 이유들을 찾아냈다.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때만이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이해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89pg. 토라진 사람의 진짜 메세지는 지극히 퇴행적이다.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의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어리게 취급하면 거만하게 윗사람 행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만연한 탓에 우리는 성숙한 자아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그리고 용서해주는-것이 가끔은 가장 큰 특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는다.


99pg. 우리 시대의 분위기는 자유분방하지만, '기이함'과 '정상'의 차이가 사라졌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사랑과 섹스의 규범적 한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을러서 경계선 안으로 밀어넣는다. 진실한 사랑은 단혼제에 있고 욕망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믿는 것 역시 여전히 확고부동한 '정상'이다.

100pg. 의사전달을 잘하는 기본 요건은 자신의 성격 중 더 문제가 되거나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일반적이지 않고 거북할 수 있는 자기 의견에 대해 자신감을 잃거나 자기혐호에 빠지지 않고 숙고할 줄 안다. 그들은 적당한 수준의 인내심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신을 표현할 수단만 갖추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을만하고 또한 받을 수 있다고 능히 믿을 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게 하여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솔직히 고백하고 대화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을 심어준다.

110pg. 과민반응을 하는 사람은 과거의 감정을 현재의 누군가-전혀 당해 마땅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이시키는 것이다. 전이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는 것은 고사하고 쉽게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의 그들의 파트너는 상당히 다르고 별로 기분 좋지 않은 결론, 상대가 유난히 이상하고 어쩌면 약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다.

114pg. 마음의 전이에 말려들면 우리는 사람이나 상황을 믿어주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불안에 빠져 즉시 과거가 지정해놓은 최악의결론으로 나아간다.

116pg.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123pg.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을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 수가 없기에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우리의 난폭한 비난은 친밀함과 신뢰의 독특한 증거이자 사랑 그 자체의 한 증상이고, 제 나름대로 헌신을 표현하는 비꾸러진 지표다. 분별있고 예의바른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끝도 없기에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뿐이다.

133pg. 학생을 가르칠 때에는 최고의 배려와 인내만이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다. 교사가 차분하려면 무엇보다 수업의 성패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해야한다. 하지만 차분함은 사랑이라는 교실 밖을 맴돈다.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학생'은 평생을 건 약속이다. 실패하면 존재가 파탄이 난다. 그러니 우리가 자제심을 잃고 서툴고 경솔한 말을 내뱉기 쉬운 것도 당연하다.

138pg. 고대 그리스의 렌즈를 통해 본다면 연인이 상대바의 서격으로 인해 불행하거나 불편한 점을 지적해도 그가 사랑의 정신을 포기했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파트너의 자아를 더 발전시키는, 사랑의 본질에 아주 충실한 일을 하려 했다고 축하받아야 한다. 신뢰하고 협력하는 분위기에서 두 프로젝트-가르치기와 배우기, 상대방의 결점을 환기하고 상대방의 비판을 허용하기-가 결국 사랑의 참된 목적에 충실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3부. 아이들
아이들이 생기고 라비와 커스틴은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을 경험하지만 육아에 찌들어간다. 엄마아빠라는 역할아래 부부관계를 할 시간도 없고 생계를 책임지는 지루한 일상이 흘러간다.


146pg.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 그들의 철저한 의존성,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147pg.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아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이들은 아무 '요점'이 없고, 이것이 아이들의 요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위치에 있기 때문에-어떤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 무기력한 피조물들은 아무도 결국 '자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은 문자그대로 사랑하는 능력에 의지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150pg. 부모는 아이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그미라도 도입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성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심술궂음과 잔인함을 보아 넘기고 항상 그 이면에 깔려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낼 수 있다. 인류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151pg. 부모로서 우리는 사랑에 또 다른 것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 의지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달려있는 그 존재 주변으로 어떠한 책임감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 할지를 깨닫는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힘이 의도와는 무관하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알게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야만인이 크리스털 잔을 쥘 때에는 반드시 가볍게 쥐라고 해야지, 자칫하면 그 우람한 손에 잔이 마른 낙엽처럼 부서질 수 있다.

155pg.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존재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159pg. 고도의 자제심, 냉소, 합리성을 요구하고, 극도의 불안과 경재으로 얼룩진 세계는 당연히 아이들에게서 잃어버린 평형을 되찾아줄 미덕을 발견한다. 성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열쇠를 얻기 위해 너무 엄격하고 확실하게 포기했던 자질들 말이다.

170pg. 예절이 반드시 냉정하고 가학적인 도구일 필요는 없다. 그저 저녁 식사가 항상 난장판이 되지 않게끔 짐승같은 면을 계속 단속하도록 가르치는 방법일 뿐이다.

176pg. 인류의 생존은 마침내 넌더리를 내고 사랑과 흥분을 선사할 더 만족스러운 원천을 찾겠다는 희망을 품은 채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들에게 달려있다.

181pg.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의 두려움과 불안정함은 관계가 시작될 때 한번만 경험하고, 결혼 하고 집을 구매하고 아이를 갖는 등 명시적인 약속을 맺은 후에는 불안이 사그라질 거라고들 상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간격을 극복하고 우리가 필요한 존재라는 보증을 획득하는 일은 단 한번에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른 끔찍한 문제가 덧붙는다. 이제는 그 어떤 불안도 합당하게 존재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재보증 같은 건 아예 생각지 않는 척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심지어 우리는 외도라는 배신행위를 하기도 하는데, 기이하게도 이는 우리가 상대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척하면서 체면을 지키려는 시도일 때가 너무나 많다.

우리가 정말 마음을 쓰는 사람에게 우리가 그를 얼마나 필요로하는지, 은연중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확보하고 아무도 모르게 제시하는 고달픈 증거이다. 불안은 별 탈 없음을 뜻하는 별난 징후일 수도 있다. 불안은 우리가 상대방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것 일이 정말로 나쁘게 돌아갈 수 있음을 잘 알정도로 우리가 여전히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신경을 쓸만큼 충분히 애정을 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82pg.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끌리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 가장 사랑한 사람들과 뚜렷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우리의 든든한 보호자들과는 철저히 금지되었지만 성인이 되어 만날 연인과는 꼭 하고 싶은 행위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제는 아이들이 생기고 우리의 파트너에게 특별히 부모다운 면이 노골적으로 요구되는 순간 더욱 까다로워진다. 상대의 성적 자아가 양육자로서의 정체성 밑에서 점점 희미해짐에 따라 그 구분은 갈수록 불분명해진다. 그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파트너에게 실수로 쓰는) 그 순결하고도 활기찬 명칭 '엄마' '아빠'다.

186pg. 파트너에게 섹스를 요구할 때 창피하고 자신이 과도하게 까발려진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부부생활에서 매일 벌어지는 타협과 줄다리기가 요구하듯, 평정심과 권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 우리를 바보나 타락한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판타지를 맡기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대신 완전한 타인을 고려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188pg. 모르는 사람을 이용하면 분노, 감정적 취약성, 상대방의 욕구를 신경 써야 할 의무를 우외할 수 있다. 우리는 비난이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선까지 특이하고 이기적으로 굴 수 있다. 모든 감정이 완벽히 차단되어 이해되기를 위하는 바라는 일말의 소망도 없고 잘못 이해될 위험도 있으며 그 결과 괴로워하거나 실망하게 될 위험도 전혀 없다. 마침내 삶의 소모적이고 거치적거리는 나머지 부분을 침대로 가져갈 필요 없이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89pg. 그러나 판타지는 대개 다수의 모순된 소망으로부터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다. 판타지가 존재하는 덕분에 하나의 현실을 파괴하지 않고 다른 현실에 거주할 수 있다. 판타지는 완전히 무책임하고 무섭도록 기이한 우리의 충동으로부터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을 지켜준다. 판타지는 나름대로 인류의 성취이자 문명의 결실이며 친절한 행동이다.

194pg.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고통의 평등이다. 그러나 괴로움의 복용량을 정확히 똑같게 계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부분적으로 위신을 분배하는 방식 탓에 발생한다. '위신'이란 등학교시키기와 세탁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들린다. 그러나 거품을 제거하고 핵심을 보면 위신은 (아이돌보기와 같이) 단지 인생에서 가장고결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가리킨다.


4부. 외도
라비는 지루한 일상속에서 외도를 경험하며 커스틴과 아이들에게 평소와 다르게 화를내며 민감하게 군다. 몰래 내연녀와 연락을 하지만 결국 그는 가정을 지키려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커스틴이 외도를 하는 상상을 하고 괴로워함)

207pg. 배우자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불륜에 뛰어드는 경우는 드물다. 파트너를 배신하는 수고를 감내하려면 대개 파트너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있어야 한다.

229pg.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사랑은 케이크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사랑을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이 줄어들진 않는다. 사랑은 집안에 아기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계속 커진다.

232pg. 보다 진실하고 충실한 사람이 되려면 적절한 예방접종을 겪어봐야 한다. 한동안 극한의 공황과 모욕을 겪고 붕괴 일보 직전까지 가봐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배우자를 배신하지 말라는 명령이 틀에 박힌 말이 아니라 영구히 뚜렷하게 빛을 발하는 도덕적 의무로 변모한다.

236pg.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237pg. 결혼: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238pg. 외도는 둘만의 기쁨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의 실망을 용기와 자제심을 이겨내겠다는 상호 서약을 배신한 것이 된다.

242pg. 그저 눈치채지 못한 척하는 편이 더 친절하고 더 현명하고 사랑의 참된 정신에 더 가까울 수 있다.


5부. 낭만주의를 넘어서
라비와 커스틴은 나이가 들면서 서로의 미숙함을 인지하고 심리치료를 통해 둘의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한다. 라비는 아이들이 잠든 밤 불면증을 겪지만 그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젊었을 때 꿈꿨던 성공적인 건축가로서의 삶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가족과 살아가는 행복의 중요성을 느낌)
그는 결혼한 지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좀 늦게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251pg. 애착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맨 처음 경험하는 부모의 보살핌에서부터 관계의 긴장과 갈등을 추적한다. 북미 인구 1/3이 생에 초기에 부모에 대한 실망을 경험하고 그 결과 원초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불안정 애착은 두려워하고 집착하고 지배하는 행동양식이고 회피애착은 방어 및 후퇴하려는 행동양식이다. 부부상담을 구하는 70프로가 회피적인 파트너와 불안정한 파트너가 부부를 이루고 있어서 서로 괴롭히는 악순환을 만든다.

278pg. 옛날에는 사람이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이정표에 도달하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런 뒤 낭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이런 실질적인 측면보다는 감정들, 영혼의 짝을 만났다는 믿음, 상대방이 나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느낌, 다시는 상대 말고는 다른 누구와도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이 중요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279pg.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은 근본에 있어서는 불완전할 것이다. 삶의 현실은 우리 모든 본성을 변형시킨다.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이상에 못미치는 양육을 맏았다. 이렇게 위험 요소들이 중첩되어 있는 와중에 완벽한 인간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따라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모두 당연히 악몽의 전형인 '엉뚱한 사람'을 곁에 주게 된다.

결혼은 '어지간히 좋은' 결혼만 있을 수 있다. 정착을 하기 전에 몇명의 애인을 사귀어 보는 것도 이 깨달음을 깊이 새기는데 도움이 된다. '제 짝'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없으며, 가까이서 보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조금씩 잘못되었다는 진실을 직접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발견할 기회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280pg.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281pg. 결혼이라는 새장 아네서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면 당연히 '까다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의 허물이 아니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려는 삶의 속성일 뿐이다. 대개 난감한 것은 결혼이란 제도이지, 관련된 개인들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랑받기'에 대해서만 알고 인생을 시작한다.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보살핌을 받고 다 받아들여지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한다. 우리는 마음속 은밀한 구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예측하고, 우리의 심정을 읽어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게 해줄 연인을 그린다. 이건 '낭만적'인 것 같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283pg. 낭만주의 결혼관은 '제 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제 짝'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는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조건이 아니다.

284pg. 우리를 자주 잘못 인도하는 미적 매체들이 부과한 기대에 따라 우리의 관계를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못은 삶이 아닌 예술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로 되돌려 놓고 사랑의 여저에서 거쳐갈 길이 우울하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86pg. 이 기술의 핵심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함께한 사람을 덜 물리고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새롭게 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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