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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인공파각 (입란 40일차) 후 일주일 기록

살콤아내 2024. 7. 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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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일 저녁 기러기 입란

79일 밤 11시 기러기 인공파각 완료 (40일 차)

7월 17일 태어난 지 8일 차

 

보통 인공파각을 하면 대부분이 약추로 태어나서 일찍 죽는다고 한다. 힘겹게 30일 이상 부화기에서 애지중지하면서 키운 알이 한순간에 잘못된다고 생각하니 맘이 좋지 않았다. 여러 정보를 검색해서 알아보니 첫 알콕 후 소식이 없으면 그래도 인공파각으로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어차피 알에서 죽나 밖에서 죽나 죽는건 똑같으니까...

 

 

기러기는 35일에 태어난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리 파각한다고 정신이 팔려서 부화기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몇 시간 동안 있어서 사롱란이 되었나?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장 확실한 것은 검란하는 것이다. 오리들이 무사히 태어나고 걱정을 한시름 덜고난 뒤 바로 검란을 했다. 기실은 공기가 많이 있었고 난황쪽은 미세하게 까만 부분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놓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 뿐.

 

하루하루 귀를 대고 들어보면 안에서 미약하게나마 삑삑 하는 소리와 함께 부지런히 콕콕콕콕 두두두두 알을 깨고 나오려는 기러기의 소리가 들렸다. 왠지 오리보다는 튼실한 아이가 나올 것 같은 느낌? 입란한지 39일 차 건강검진 받고 온 날 저녁이 되자 알콕이 보였다. 이제 여기서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기러기가 나와야 한다.

 

 

 

 

 

784일 차...아무 소식이 없다. 나는 조금씩 알을 파각하기로 했다. 78일 아이들 하원 전인 오후 3시에 급한 대로 일단 부리 쪽 숨구멍으로 시작해서 머리부분을 파각한 뒤 물을 받아서 부화기 안에 넣어 뿌옇게 만들며 습도와 온도를 아주 높이 올려준 뒤 기다렸다. 기러기도 아직 난황이 덜 흡수되었는지 핏줄이 참 많았다. 막을 벗길 때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와서 이대로 힘없이 죽는 건가?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난막이 붙어서 반드시 파각을 했어야 하므로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 10시 넘어 다시 조금씩 파각을 했다. 인공파각을 4번째로 하니까 어떻게 껍질을 벗겨야 피가 안 나올 수 있는지 대충 감이 생겼고, 일단 피가 나면 잠깐 멈추고 다시 부화기에 넣고 하는 식으로 반복했다. 이번에는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따뜻한 물을 받아서 눌어붙은 난막을 촉촉이 적셨다. 1040분 쯤 머리 쪽에 피딱지가 진 얇은 막을 제거하니 머리가 먼저 힘차게 알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자기 힘으로 나올 수 있도록 다시 부화기 안에 집어넣었다.

 

 

 

11시쯤인가...? 일을 하면서 남편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방에서 아주 우렁찬 삑삑삑 소리가 들려서 가봤는데, 부화기 안에 있던 기러기가 사라졌다! 기러기는 피아노 위에 있었는데, CCTV를 돌려보니 알에서 완전히 나온 기러기 머리쪽에 습도를 위한 물그릇이 있었고, 머리가 자꾸 물그릇으로 들어가니 아이가 숨을 쉬기 위해 머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나는 기러기 새끼가 힘이 그렇게 셀 줄 몰랐다. 기러기는 자기 몸을 있는 힘껏 사용해서 플라스틱으로 된 부화기 뚜껑을 옆으로 밀고 함께 피아노 위로 튕겨져 나갔던 것이었다. 만약 기러기가 피아노 아래로 떨어졌더라면 너무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것 같다. 탯줄과 알은 완벽히 분리가 된 상태였다.

 

 

 

나는 부화기를 내려놓고 일단 온열램프가 없으므로 부화기 안에서 기러기 털을 말리려고 했는데, 기러기가 너무 힘이 세서 또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밤 12시쯤 아이스박스와 핫팩 여러개를 놓고 그 안에 기러기를 넣어 온도를 33도 이상으로 유지하며 하루 정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급식소로 쓰던 유리 수조에 톱밥을 깔고 온열램프를 켜서 하루 정도 회복할 시간을 주었다. 오리들은 세 마리가 함께 있어서 거의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있는데, 혼자 있는 기러기는 외로운 것인지 무서운 것인지 계속 엄청난 소리로 삑삑거리며 울어서 민원이 들어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바로 오후 1시쯤에 베란다에 오리들과 합사했다. 처음 하루 정도는 오리들도 낯선 것인지 자기네들끼리만 있고 공격?하려는 양상을 보였는데, 이삼일 함께 있다 보니 함께 어울려서 잘 지냈다.

 

 

 

기러기는 외국 동화에 나오는 duckling이랑 똑같이 생겼다. 노란 바탕에 갈색 줄무늬. 작고 귀엽다. 기러기는 오리와 다르게 발톱이 좀 더 날카롭고 어디 올라가서 먹으려는 습성이 있다. 밥그릇이나 물그릇을 주면 오리는 바닥에 발을 붙이고 찹찹거리면서 먹는데, 기러기는 그릇 가장자리에 일단 앉는다. 그리고 털이 좀 푸석푸석하며 부리에도 갈색 무늬가 있다. 처음에는 노오란 아기오리와 다른 생김새에 못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이쁘고 귀엽다. 기러기는 4일 먼저 태어난 오리들에게 치이는 건지 9일인데도 오리보다는 덜 큰 느낌이다.  놀러온 아이들도 덩치가 커져 버린 오리말고 작고 귀여운 기러기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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